100년 전 1926년 10월 1일, 나운규 감독·주연의 영화 <아리랑>이 경성의 단성사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3.1운동에 가담했다가 미치광이가 된 주인공을 그린 <아리랑>은 항일투쟁과도 같은 영화였고, 개봉 첫날 경찰 기마대까지 동원되는 등 일대가 아수라장이 될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서울신문. (2021.4.11). [근대광고 엿보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광고)* 그런데 <아리랑>
이전, 나운규의 영화 인생이 부산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함북 회령 출신인 나운규는 1924년 부산으로 내려가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만든 영화 <운영전>에서 단역으로 데뷔했고, 1925년 영화 <심청전>의 심봉사 역으로 첫 주연을 맡으며 본격적인 영화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 2년 넘게 상영된 <아리랑>은 관객 15만 명을 동원하며 대성공을 거둠.(당시 서울 인구 약 100만 명)
부산이 오늘날 '영화의 도시'가 된 배경에는 1924년 부산에서 탄생한 한국 최초 주식회사 형태의 영화사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있습니다. 지금의 중구 대청동 복병산 자락에 터 잡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는 나운규를 비롯한 안종화, 이경손 등 초기 영화인을 배출하고, <해의 비곡>(1924), <운영전>(1925) 등 4편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부산일보. (2009.3.18). 한국 첫 영화사 '조선키네마' 부산 첫 영화관 '행좌' 표식 만든다.)
최초의 한국 영화는 1919년 김도산 감독·주연의 <의리적 구토>입니다.* 한국 영화계는 이 영화가 개봉한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 100주년이던 2019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020년에는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정점을 찍었습니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9.6.25). 영화 ‘기생충’으로 돌아본 한국 영화 100주년.) 한국 최초의 극장은 1895년 설립된 인천의 ‘협률사(協律社)’(現 애관극장)로 알려졌지만, 한국 최초의 활동사진 상영은 1904년 부산의 ‘행좌(幸座)’에서 있었습니다. 1903년 부산 남빈정(南濱町)에 처음 문을 연 행좌는 1910년대 들어 활동사진이 큰 인기를 끌면서 활동사진 전용관 ‘행관(幸館)’으로 거듭났고, 오늘날 남포동 극장가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송정좌(1903), 부귀좌(1905), 부산좌(1907), 욱관(1912), 보래관(1914), 상생관(1916) 등이 차례로 개관하는 등 극장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 윤백남 감독의 <월하의 맹서>(1923)를 최초의 한국 영화로 보는 견해도 있음.
1930년대부터 지금의 ‘BIFF 광장’과 용두산 공원 인근에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남포동 극장가는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기까지 근대 한국 영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남포동 극장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최초의 유성(有聲)영화 상영 또한 부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29년 행관에서 토키(talkie) 영화인 일본 시대극 <돌아오는 다리>가 상영되었고, 1930년대 영광키네마 등에서 극영화 제작 운동이 시작됐습니다.(한국 영화의 고향, 그리고 부산 국제 영화제. 2026.3.9. 인용: https://busan.grandculture.net) 부산에서, 한국전쟁 중 피란 온 영화인들에 의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발족되었고, 1958년에는 한국 최고(最古) 영화상인 부일영화상이 창설되었습니다. 서울의 충무로가 새로운 한국 영화의 메카가 된 1960년대 이후에도 다수의 로케이션 영화가 제작되는 등 부산은 명실상부한 한국 영화의 고향으로 각인되었습니다.(1950년대 부산 로케이션 영화. 2026.3.9. 인용: https://busan.grandculture.net) 무엇보다도 1996년 시작되어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는 2014년 부산이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UNESCO Creative City of Film)’로 지정되는 등 세계적인 영화 도시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부산극장사
부산근대영화사 : 영화상영자료 1915-1944
근대 부산 영화사
부산영화사
초창기 부산 영화사 : 1889년~1925년 극장과 영화흥행
(구술로 보는) 부산영화의 역사
부산국제영화제 20년 : 영화의 바다 속으로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
최근 들어 한국 영화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 산업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극장이라는 한 공간에서 공중(公衆)이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람(觀覽) 문화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때마침 불기 시작한 OTT 붐은 영화의 정의마저 다시 쓰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본질적으로 극장 관람을 전제로 한 예술이고, “나갈 수 없다, 끊어볼 수 없다, 빨리 돌려볼 수 없다”는 극장의 한계가 오히려 젊은 세대 관객을 극장으로 조금씩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과거 명작 영화를 큐레이션하여 재개봉하는 극장들이 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SBS NEWS. (2026.1.25). 극장의 '옛 명작' 큐레이션에 호응한 2030.)
“불이 꺼지고, 옆자리 사람들과 함께 심장이 뛰는 그 공간, 그것이 바로 마법입니다.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합니다.”
- 스텔란 스카스가드, 제83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 소감 中
"영화관은 영화의 빛을 보기 위해 어두운 곳이며, 우리는 영화라는 창을 통해 영혼이 해방될 수 있도록 극장 안에 자신을 가둔다. (중략) 증오와 분열의 시대에,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면서 맞추는 호흡과 심장박동의 행위가 보편적인 연대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 박찬욱,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선정 소감 中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영화의 얼굴 : 수집가 양해남의 한국 영화 포스터 컬렉션
한국영화 100년 100경
한국영화의 역사와 미래
돌아보면 영화 산업의 전성기는 1950~60년대 ‘작가주의(Auteurism) 영화’의 태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브레송(Robert Bresson), 트뤼포(François Truffaut), 고다르(Jean-Luc Godard)로 대표되는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부터 클루게(Alexander Kluge)와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의 뉴저먼시네마(New German Cinema), 영국의 히치콕(Alfred Hitchcock)부터 핀란드의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 미국의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한국의 박찬욱까지 전 세계적으로 '영화작가(Film Auteur)'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영화를 지독히도 사랑하는 자타공인 시네필(Cinephile)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달리 보게 하는 ‘영화적 체험’의 마법,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영화에 있다고 믿는 시네필들은 다시 한번 ‘영화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고대합니다.
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1943~1983 인터뷰집
아녜스 바르다의 말 :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
쿠엔틴 타란티노 : 예술미와 현실미의 혼합
데이비드 린치 : 컬트 영화의 기이한 아름다움
에릭 로메르 : 은밀한 개인주의자
환등기 :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히치콕과의 대화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 : 「기생충」부터 「플란다스의 개」까지 봉준호의 모든 순간
올해로 서른 살 생일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는 2026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립니다. 디지털 세상 이전의 영화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어 더없이 소중한 애틋함과 아련함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영화가 스크린에 띄워지기 직전 불이 꺼질 때의 그 두근거림을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지지 않길 바랍니다.(그나마 희소식은 최근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실로 오랜만에 구름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면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던 남포동 영화의 거리에서 다시 한번 우리가 익히 알고 사랑했던 극장 영화(Cinema)의 부활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꿈꿔봅니다.
KINO cinephile : 2024 a tribute issue
시네필의 시대 : 한국 영화문화에서 비디오필리아와 시네필리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2019~1999 : 이동진 영화 평론집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 반전 없는 것이 반전인 김시선의 영화 생활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