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우리는 ‘일’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무실, 공장, 교실, 병원 등 장소도, 그 안에서의 역할도 제각각이지만 하루의 대부분은 일로 채워집니다. 일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인 동시에 개인의 역할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일하는가?”, “일은 내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좀처럼 던지지 않습니다.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2026년 5월 1일, 노동절이 한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법정 공휴일이 되었습니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4.6.). 올해부터 전 국민 5월 1일에 쉰다…63년 만에 공휴일 지정) 단순히 쉬는 날이 하루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1963년부터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62년을 살아온 이 날이, 마침내 ‘노동절’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고, 모든 노동자에게 동등한 휴식의 권리를 보장하는 날이 된 것입니다.
노동절을 맞아 우리가 ‘일’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생각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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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의 역사는 고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주 6일, 하루 10시간 이상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시카고 파업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나와 더 나은 근무 환경과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였습니다.(Illinois Labor History Society)
5월 3일,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을 향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했습니다. 다음 날 이에 항의하고자 시카고 시내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평화시위 도중, 의문의 폭발물이 터져 시민과 경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른바 노동운동 역사의 전환점이 된 '헤이마켓 사건'(Library of Congress – Chronicling America)입니다.
이 사건 이후 1889년 7월, 국제 사회주의 조직인 ‘제2인터내셔널’(한국노동사회연구소. (13.5.11.). 제2인터내셔널의 탄생) 창립대회에서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고자 했던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을 기리고, 이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결의하였습니다. 한 도시의 투쟁이 전 세계 노동자의 연대와 기념일로 확장된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절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연맹회' 가 주최한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각 노동단체와 공장노동자들은 당일 동맹파업을 결의하고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행진을 계획하였으나, 조선총독부의 금지로 무산되었습니다. 대신 약 2,000명의 노동자들은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기념 강연회로 행사를 대체했습니다. 노동절 기념행사는 3·1운동 직후부터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이를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지도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집니다. 이렇게 시작된 노동절 행사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광복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광복 이후 정부는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정하여 기념해 왔으나, 1958년에는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전신) 창립일인 3월 10일로 날짜를 변경하였습니다. 1963년 4월 17일,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등 노동관계법 개정과 함께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 ‘노동절’이라는 명칭이 ‘근로자의 날’로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해 왔으나, 많은 노동단체들은 명칭과 날짜 변경이 노동절의 본래 의미를 훼손한다고 반발했습니다. 특히 1987년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여러 노동단체들의 연대조직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3월 10일을 더 이상 근로자의 날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으며, 세계 노동절 100주년인 1989년에는 전국적인 동맹파업 및 거리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서울신문. (1991.5.2.).「노동절」 부활싸고 3년째 입씨름/노·정 팽팽한 대립의 시말)
결국 정부는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명칭은 '근로자의 날'로 유지하되 1994년 3월 9일「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날짜를 5월 1일로 환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공무원과 교사, 특수고용직은 유급휴일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채로 남았습니다.
2025년 10월 여야 합의로 62년 만에 명칭이 '노동절'로 회복되었으며, 2026년 3월 31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마침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로써 올해 5월 1일은 공무원과 교사, 특수고용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처음으로 동등한 휴식을 보장받는 첫 번째 노동절이 되었습니다.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유급휴일'에서 '법정 공휴일'로의 변화는 단순한 명칭 조정이나 달력의 색깔 변경 이상의 의미와 상징성을 지닙니다. 이는 노동을 바라보는 국가의 인식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이며, 노동자의 권리와 휴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노동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산업화 시기 노동이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면, 오늘날 노동은 자아실현과 사회적 관계 형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를 넘어 삶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는 달리, 현실의 노동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고용 불안정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취업자 1,872시간, 노동자 1,874시간으로 OECD 평균(취업자 1,742시간, 노동자 1,717시간)을 크게 웃돕니다. 이는 OECD 38개 회원국 중 6~7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여전히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오래 일한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장시간 노동은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한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그럼에도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와 경쟁 구조 속에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성실함의 척도로 작동하는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 4일제와 주 4.5일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더 이상 오래 일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으며,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삶의 질과 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주 4일제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째, 총 근무시간은 유지하면서 4일에 나눠 일하는 100:100:100 모델, 둘째, 임금은 유지하면서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100:80:100 모델, 마지막으로 근무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도 함께 줄어드는 80:80:80 모델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100:80:100 모델, ‘100% 임금, 80% 시간, 100% 성과’의 원칙이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10개국 이상에서 ‘4 Day Week Global'(주 4일제 시범사업을 기획·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의 주 4일제 시범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참여 기업의 92%가 제도를 계속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스트레스와 병가 사용은 감소하고 매출은 안정화되는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한국의 상황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국회도서관이 발간한 Data+ 제7호에 따르면, 2025년 2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8.1%가 주4일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습니다. 현재 정부는 근로기준법 직접 개정보다는 「실근로시간 단축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과 시범사업 확대를 통해 주 4.5일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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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이러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AI가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확보된 시간을 노동시간 단축과 휴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생산성과 복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됩니다. 이는 AI로 인해 절약된 시간을 다시 노동자에게 환원하자는, 이른바 ‘효율성 배당(efficiency dividend)’ 개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이론에 그치지 않습니다. JP모건체이스의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은 2025년 11월 한 경제포럼에서 "AI가 향후 20~40년 내 선진국들의 근무일을 주 3.5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Fortune Korea. (2025.11.7.). 다이먼 "AI가 주3.5일 근무 시대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 또한 “향후 10년 안에 AI가 의사·교사 등 전문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이러한 전문 지식이 보편화되는 프리 인텔리전스(free intelligence) 시대가 올 것”(ZDNet Korea. (2025.3.31.). 빌 게이츠 "AI가 10년 내 의사·교사 큰 대체···인간, 대부분 직종서 불필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이 더 이상 이상적인 구상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결합된 현실적인 가능성임을 보여줍니다.
미래의 일터는 ‘기술 중심의 효율’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설계’를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AI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더 인간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제는 노동의 시간을 늘릴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을 새롭게 설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주 4일제와 AI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노동절이 ‘8시간 노동’이라는 권리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면, 오늘날의 노동절은 ‘얼마나 덜 일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더 인간답게 일할 것인가’를 묻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을 중심으로 삶을 설계해 왔지만, 이제는 노동의 방식과 의미를 재조정해야 할 때입니다.
결국 “우리는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정해진 답이 없는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다양한 관점과 기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탐색해 나가야 합니다. 도서관은 바로 그러한 탐색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노동의 의미를 성찰하는 인문서부터 노동의 현실을 기록한 에세이, 그리고 노동의 미래를 전망하는 다양한 책들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이 질문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1일, 대한민국의 모든 노동자가 처음으로 같은 날 함께 쉽니다. 그 특별한 날을 계기로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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