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필요한 것이 정보(줄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영화가 만들어내는 풍경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행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는 아무래도 요약이 되지 않는 부분에 진짜가 있다는 말은 조금 어리석고 시대착오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디 당신이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당신 자신과 홀로 대면하는 일의 즐거움을 경험으로 알게 되기를. (p. 10)
다시 한번, '좋은 영화'와 '좋아하는 영화'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누가 물어보면 추천작으로 언급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제법 여러 번 본 영화들이 있다. 즐기는 데 약간의 죄책감을 포함한 불유쾌가 수반되며 그 불유쾌가 자극되는 부분이 대유잼인 '길티 플레저'와 달리, 이 계열의 영화들은 지치고 피곤할 때 머리는 다른 데 두고 틀어놓을 수 있다. (p. 58)
요약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줄거리지만, 영화가 가장 자기다워지는 순간은 요약되지 않는 순간들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일 때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영화에서 이상한 순간들을 보물 상자처럼 잔뜩 모아보시기를. 이 엔딩의 뜻이 무엇인지 정답을 찾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내 삶의 90분 혹은 180분을 어떻게 대신 살아냈는가를 체험하는 데 있다. 복선도 중요하고 줄거리도 중요하지만 자기 전 불쑥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들은 줄거리 때문이 아닐 때가 많다. 영화가 보게 만든 빛, 듣게 만든 소리, 따라 짓게 만든 표정과 웃고 울게 만든 리듬, 공명하는 순간을 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pp. 191-192)
영화를 유튜브에서 '요약 영상'으로 보거나 줄거리와 자막 위주로 빨리 감기해서 보는 시대에, 이 책은 '영화적 체험'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영화는 '설명적 대사와 지시적 자막' 이상의 빛과 소리와 시간의 예술이며, 결국 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일부를 할애해 다른 세계와 다른 삶을 '영화적으로 체험해 봄'으로써 우리의 세계와 삶을 확장하는 데 의의가 있다. 영화 주간지 기자인 저자는 연기하는 배우들의 표정, 사운드와 미장센, 감독의 시선과 메시지라는 영화 예술의 주요 요소를 중심으로, 영화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여러 영화를 예시로 들어가며 나름의 해답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