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집과 문학의 집은 서로 상대를 배반하거나 초과하는 타자다. 그럼에도 서로 순환한다. 내가 붙들어보려 했던 것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부터 탈출하고 몸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긴장이었다. 문학의 집과 영화의 집에 나를 가두고, 빛으로 가득한 그 시공간을 오히려 어둠 속을 더듬는 사람처럼 한 걸음씩 통과하면서 누락되었거나 발명된 순간들을 마주할 때의 희열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p.13)
인간은 자기 삶을 매 순간 '부분'으로서 살아내며 시작과 끝을 '전체'로서 관망하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를 지닌다. '끝'에 이르러 지나온 시간을 회고하더라도 이것은 실시간적인 조망이 아니라 사후 재구성에 가깝다. 끝에서 과거를 바라볼 순 있다. 그러나 중간에서 현재를 보는 일은 불가하다. 탈선할 가능성, 경유지에 잘못 하차할 가능성, 시간표가 어그러질 가능성까지 있다는 점에서 기차는 인생을 닮았다. (p.246)
우리는 어떤 사건이든, 사망자를 단수가 아닌 복수로만 기억해왔다. 전쟁, 테러, 학살, 난민, 기근, 화재, 붕괴, 빈곤 등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통계 수치는 '죽은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내고, 한 개인의 얼굴과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해버린다. 그러나 그들은 집단으로 떠난 것이 아니며 모두 자기만의 이름과 얼굴을 가진 '한 명'의 개인이었다. 『햄닛』과 「햄넷」은 우리가 감당하려 하지 않았던 '단수로서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p.419)
『밤과 책』은 영화와 그 원작이 된 소설·희곡을 나란히 펼쳐놓는 책이다. 단순히 선행 문학과 후행 영화를 비교하는 작업은 아니다. 삶의 서사가 텍스트와 영상이라는 각기 다른 형태로 빚어지고 변용될 때, 우리는 두 개의 세계와 창작자의 시선을 목격한다.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세계의 차이를 발견하는 여정은 다양한 감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며, 끝내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리라는 믿음"에 다다른다. 저자가 이끄는 이 믿음의 시선을 포개어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술과 삶을 더욱 풍성하게 독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