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70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거룩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내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해마다 현충일을 기리는 이유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이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국가유공자 예우 더 높게, 지원 더 두텁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은 브래들리(Omar Bradley) 당시 美합참의장의 증언처럼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적을 만난, 잘못된 전쟁(The wrong war, at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and with the wrong enemy)”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전란 3년 동안 약 170만 명이 희생되었고, 그중 99만여 명이 민간인이었습니다.(국가기록원. 2025.6.23. 인용: www.archives.go.kr) 유엔은 창설 이후 처음으로 6.25전쟁에 유엔군을 파견하였고, 1953년까지 참전한 연합군은 총 195만여 명에 이르며, 이중 약 4만 명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전쟁기념관. 2025.6.23. 인용: www.warmemo.or.kr)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할까요?
"영웅은 존재할 수도 없고 또 존재해서도 안 되며, 오직 인간만이 존재해야 한다."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은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전쟁은 있어왔고, 2025년의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류가 수천 년 쌓아 올린 문명을 일거에 파괴하는 전쟁은, 역설적이게도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에 내재된 위대한 힘(회복력, resilience)을 확인케 하고, 문화와 인문학의 발전에 풍부한 자양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현대적 담론을 가져온 모태가 되었던 역사에서 보듯이, 전쟁은 역사의 큰 줄기를 바꾸는 결정적 동인이자 변곡점이 되어 왔습니다. 文·史·哲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한마디로 ‘인간과 인류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사회의 특성에 기원하는 ‘전쟁’은 인문학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전쟁문학’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들에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전쟁문학(戰爭文學). 2025.6.23. 인용: encykorea.aks.ac.kr) 전쟁이라는 극한 한계상황에서 더욱 극명히 드러나는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현대사회의 부조리는 인간의 문제적 사상이나 감정을 주로 다루는 문학(그리고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예술의 단골 소재가 되어왔습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전장(戰場)에서의 인간소외, 허무주의뿐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도 문학의 매력적인 소재로 다뤄졌습니다.
부산은 6·25전쟁 1,129일 중 1,023일 동안 두 차례 대한민국의 수도였습니다. 부산 서구 부민동 일대에는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경무대)’를 비롯하여 ‘임시수도 정부청사’, ‘유엔기념공원(유엔묘지)’ 등 6·25전쟁 관련 건축·문화유산이 보존돼 있습니다. 전란 중 대통령 집무실인 경무대는 당시 경남도지사 관사로 옮겨졌고, 정부청사는 경남도청에 자리 잡았습니다. 사회부와 심계원, 문교부는 부산시청에 마련하였고, 재무부는 부산사세청(現중부산 세무서)에, 체신부는 부산우체국에 두었습니다.
피란 국회는 형법, 지방자치법, 노동관계법률을 비롯하여 천여 건의 법률안, 동의안 등을 9번의 회기에 걸쳐 심사·처리하였습니다. 상무관은 경남도청·검찰청·법원으로 그 관리가 이어지다가 2002년 학교법인 동아학숙에 인수 후 2004년 해체되었고, 현재는 용마루 기와 등의 부재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 상무관 자리에 들어선 동아대 부민캠퍼스 국제관 입구에는 “국회도서관 옛터(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2월 20일 임시국회의사당이 있던 이곳에서 국회도서관이 시작되었음)”라는 표지판이 부착되어 있어, 희미하나마 옛 국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는 1955년 유엔총회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있습니다. 6.25전쟁 중 유엔군 희생자 40,895명 가운데 11,000여 명이 부산 유엔묘지에 묻혔다가 대부분 본국 송환되었고, 현재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뉴질랜드 등 11개국 2,300여 구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에는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전몰자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습니다. 해마다 11월 11일* 11시 11분에는 이곳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며,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한다고 합니다.(공감신문. (2022.9.4).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
*11월 11일은 1차 세계대전 종전일로,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국들은 이날을 현충일로 기념하고 있음.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너의 제안으로 시작된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의 묵념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백화점 입구에는 1950년 9월 23일 가장 먼저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스웨덴의 참전기념비가 있으며, 남구 대연동에서 용당동까지 ‘유엔평화로(평화역사의 길)’을 조성하여 6.25전쟁 때 목숨을 바친 전 세계 젊은이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피란수도 부산의 흔적은 문학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동리는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에서 6.25전쟁 당시 부산의 모습을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떠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바다에 빠지거나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러한 최후의 점 같은 곳”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절망과 소외의 공간, 戰時 부산의 고된 피란 생활을 묘사한 소설로는 이호철의 『탈향』과 『소시민』, 손창섭의 『비 오는 날』, 황순원의 『곡예사』, 안수길의 『제3인간형』 등이 있습니다.
2025년 6월의 우리는 과연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할까요? 지난 전쟁의 참상을 역사에서 배우고 문학으로 느끼면서 후대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깨어있을 것, 그것이 남겨진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빠른 종식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